우아하고 고풍스런 지승공예… “새로운 천년 위해”
우아하고 고풍스런 지승공예… “새로운 천년 위해”
  • 이건주 기자
  • 승인 2024.03.25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남 무형문화유산 ‘지승제조’ 최영준 보유자
시할아버지에 배워 손녀까지… 5대 걸쳐 전승
교육·심사 등 지속… “국가 무형문화유산이 꿈”
지난 18일 최영준 지승제조가 내포 중흥아파트 자택에서 직접 만든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건주 기자
지난 18일 자택에서 만난 최영준 지승제조 보유자가 직접 만든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이건주 기자

지승공예(紙繩工藝)란 종이 지(紙)에 새끼 또는 줄을 뜻하는 승(繩)이 합해진 말로 종이를 새끼처럼 꼬아 만든 공예다. 지승공예의 정확한 유래와 역사는 알기 어렵지만, 조선 초 군사들이 종이 갑옷을 입었다는 것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지승 용기에 비밀문서를 보관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진다.

홍성군 홍동면 출신인 최영준 장인(匠人·73)은 1986년 충남 무형문화유산(옛 무형문화재) 제2호 지승제조 보유자가 됐다. ‘지승’ 즉 종이는 현재 손으로 만든 한지를 사용한다. 한지는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 수백 번의 여과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의 서책을 찢어 꼬아 갑옷 등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지승공예는 주로 선비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간혹 승방에서 승려들이 지승공예를 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종이를 꼬아 만든 미투리가 널리 유행했다.

지승공예는 과거에도 갑옷이 될 만큼 단단하고 보온성이 뛰어났다. 물론 현대의 한지 또한 유연성과 내구성, 보온성이 탁월해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생활 용기 재료로 손색이 없다. 지승공예는 항아리 모양의 요강과 발우, 일반적인 항아리, 화살통과 모자. 가방, 자라병 등 대부분의 생활 소품이나 도구를 만들 수 있다. 한지가 지닌 물성을 극대화해 보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공예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영준 지승제조 보유자의 1980년대 모습. 보유자 제공
최영준 지승제조 보유자의 1980년대 모습. 보유자 제공

최영준 보유자는 1999년 전국한지공예대전 이후 수십 차례 공예대전 심사위원을 맡아왔다. 2004년 전주 기전여대 사회교육원 지승공예 초빙 교수를 시작으로, 예원예술대 대학원 초빙 교수, 국립중앙민속박물관 강사, 한서대 전통문화 교육 특강, 문화재청 지원 전통공예 체험관 운영, 충남도립대 평생교육원 강의 등 20여년간 전파를 위해 노력했다.

현재는 홍성군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 무료 교육을 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주간과 야간 주마다 두 차례 일반인 교육을 담당해오다 올해부터는 지자체 예산이 줄면서 무료 교육을 다니고 있다.

최영준 보유자는 “지승공예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비를 받는다고 해서 교육하고, 없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군 예산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몰라도 일주일에 2번씩 3~4시간을 교육하려면 소요 비용이 있어 무료 교육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영복 충남 무형문화재 초대 보유자는 최영준 보유자의 시할아버지다. 김영복 장인은 일제강점기 서산 부석사 벽화 선사에게 지승공예를 배웠다. 이후 광천에서 한약방을 하면서 지승공예 명맥을 이어오다 1977년 무형문화재 전승자가 됐다. 최영준 보유자는 시할아버지를 9년 동안 모시며 자연스럽게 지승공예를 익혔다.

지승공예는 현재 5대를 잇고 있다. 시할아버지를 시작으로, 손자며느리인 최영준 보유자와 최 보유자의 며느리인 주혜원 충남문화원연합회 팀장, 대학교에 다니는 손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 팀장은 홍성여고를 다닐 때 지금의 시어머니인 최영준 보유자의 특강을 통해 지승공예를 체험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최근까지 함께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를 했고, 이후에도 시간 날 때마다 돕고 있다. 주 팀장은 디자인 공모전 대상을 받기도 했다. 대학생인 손녀는 걸음마를 뗄 때부터 한지를 갖고 놀았다. 전주한지공예대전과 안동한지공예대전 등 학생부 전국대회에서 여러 번의 수상 경력도 있다.

최 보유자는 “월요일 저녁 7시부터는 홍성성결교회에서, 화요일 오전 10시부터는 이응노 미술관 서고에서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지승공예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많은 사람이 지승공예를 체험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지승제조를 국가 중요 무형문화유산으로 만들고 싶다”며 “수강생들과 함께 작품 전시를 하고 싶은데, 공간이 없어 일단 보관 중”이라고 덧붙였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지승공예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은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도구는 비교적 간단하다. 한지와 크기를 재는 자, 종이를 자르는 칼, 자르는 가위, 송곳만 있으면 된다. 지승으로 작은 발우를 만들려면 한지 결대로 잘라 굴곡 없이 매끈하게 꼬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한 손으로는 날실을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씨줄을 비틀어 꼬아가며 겹 올이 날 줄이 되고 외올이 씨줄이 돼야 작품의 형태를 빚어낼 수 있게 된다. 최영준 보유자는 “신축성이 있는 한지는 천년 역사와 함께 한국인을 대표하는 공예품의 모습으로, 생활의 도구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영준 보유자와 며느리 주혜원 충남문화원연합회 팀장이 작품을 만드는 모습. 보유자 제공
최영준 보유자와 며느리 주혜원 충남문화원연합회 팀장이 작품을 만드는 모습. 보유자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