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타고 5박 6일 그리고 2년… “참혹한 전장, 그리운 전우”
배 타고 5박 6일 그리고 2년… “참혹한 전장, 그리운 전우”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6.2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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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운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충남도지부장
69년 입대·70년 3월 파병… 72년 3월 ‘제대’
중부전선 배치… “형 같았던 박 하사 그리워”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송길운 충남도지부장. 사무실은 내포신도시에 있는 충남보훈회관 4층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송길운 충남도지부장. 사무실은 내포신도시에 있는 충남보훈회관 4층이다. 사진=노진호 기자

베트남전쟁은 1960년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벌인 전쟁이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은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월남전(越南戰)’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은 1964년 첫 파병 후 1973년 3월 철수 때까지 32만이 넘는 국군이 베트남에 갔다. 그들 중 5000여명은 전사했으며, 1만명 이상은 전후 고엽제로 고통받았다. 월남전 파병은 최초이자 최대였으며,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내포뉴스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현대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을 만났다. 주인공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송길운 충남도지부장(77)이다.

송길운 지부장은 1969년 3월 논산훈련소로 입대 후 강원도 양구에 있는 8인치 포 부대에서 1년간 훈련받았다. 이후 1970년 3월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가 1972년 3월에 돌아왔다.

송 지부장은 “지원자를 모집했고, 경쟁이 치열했다. 휴가 가는 것보다 어려웠다. 우리 대대에서는 나만 선발됐다”며 “호기심도 있었고, 군인이기에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양구 오음리에 있는 월남참전훈련소에서 한 달쯤 교육받았다. M16 등 신무기와 정글에 대해 배웠다”며 “기차로 부산으로 가 배를 탔다. 베트남까진 5박 6일이나 걸렸다. 사이공 쪽에 도착해 헬기를 타고 현지 부대로 향했다. 거리가 멀고 위험해 자동차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송 지부장은 중부 전선인 케논 지역의 포병 부대에 배치돼 측각수 임무를 맡았다. 그는 “가보니 냄새부터 달랐다. 분위기가 싸늘했다. 그곳이 전쟁터임을 실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송 지부장에게 월남전에 관해 묻자 구분이 모호하고, 판단이 어려운 전쟁이라고 했다. 그는 “베트공은 낮엔 농기구를, 밤엔 총을 든다. 전선도 적도 없기도 하고 모두이기도 하다. 그게 월남전”이라고 전했다.

당시 작전은 길게는 1주일, 짧게는 3일 정도 진행됐다고 한다. 그는 10차례 정도 전투를 겪었다. 송 지부장은 “화력 지원을 계속해야 했다. 하도 많이 쏴 나무가 숯이 됐다. 진지를 판 건지 포탄이 떨어진 자리인지 곳곳에 웅덩이가 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 뼈도 있고, 전갈도 우글우글했다. 참혹했다”며 “사진을 참 많이 찍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져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이면 비명이 들리기도 했다. 베트콩은 우리 군을 납치해 고문하고, 다음 날 아침에 부대 철조망에 찢긴 시체를 걸어놓기도 했다. 그럼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다”며 “모두 고생이 많았다. 야간 매복 나갔다 힘겹게 돌아오는 전우들을 보면 참 안쓰러웠다”고 더했다.

설명이 힘든 참혹한 전장이었지만, 추억도 있었다. 송 지부장은 “현지인들은 한국군을 좋아했다. 촌장이 초대해 가면 좋은 대접을 받았다”며 “우리 군은 현지인들에게 의료품, 쌀 등을 줬다. 또 차로 이동하다 닭이라도 치면 20~30배로 보상했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닭을 던져놓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회고했다. 이어 “채명신 사령관은 ‘베트콩 100명을 놓쳐도 양민 1명을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그 명령이 잘 지켜졌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송 지부장은 또 “박 하사가 가장 그립다. 나보다 세 살 위의 분대장이었는데 형님처럼 따랐다. 그곳에서 중사로 진급도 했다. 나보다 먼저 귀국했는데 그 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부대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렇기에 기본은 1년이지만, 연장을 해 2년을 채운 것”이라고 전했다.

송 지부장은 1972년 3월 귀국 후 제대했다. 복무 기간은 무려 37개월이었다. 중대장의 부탁으로 두 달이나 더 군복을 입었다고 한다.

제대 후엔 참 여러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송 지부장은 “군 휴가 중 일본 오키나와에 경유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처음 트랙터를 봤다. 1974년 충남 1호 트랙터를 수입하기도 했다”며 “농사를 접고 상경해 사우디도 3년 다녀왔다. 대전에서 렌터카 회사도 하고 레미콘 공장, 대형마트도 했다. 어렵기도 했고, 좋은 시절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송 지부장은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충남도지부는 15개 시·군 지회가 있고, 회원증을 받은 건 2100여명이다. 준회원도 2300여명쯤 된다”며 “2017년 5월에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에 있는 월남참전자는 7500명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린 2012년 4월 19일 법정단체가 됐다. 각종 선양 활동을 하고, 산불 감시나 환경정화 등 사회에 도움 되는 일도 앞장서고 있다”며 “월남참전자 평균 나이는 78세다. 아직 건강할 때 더 많이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송길운 지부장은 “충남도와 시·군의 지원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서산시장은 공약으로 수당을 확대하기도 했다. 정말 감사드린다”며 “제대 후 30년쯤 지나 베트남에 다시 가봤다. 참 많이 발전한 모습에, 한국 기업이 진출한 모습에 뿌듯했다. 그들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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