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운동했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죽기 살기로 운동했죠.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1.26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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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펜싱 김정아 선수
1997년 불의의 사고·2006년 펜싱 시작… 2023년 은퇴
가장 빛났던 전국장애인체전 4관왕… 아쉬웠던 2010년
감사의 뜻 담은 공로패 주고픈 사람… “김지환 관장님”
17년여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휠체어펜싱 김정아 선수,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기에 후회도 없어 보였다. 사진=노진호 기자
17년여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휠체어펜싱 김정아 선수, 최선을 다한 시간이었기에 후회도 없어 보였다. 사진=노진호 기자

2023년의 끝을 4일 앞둔 지난달 27일 홍성군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는 특별한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홍성군장애인체육회 임원과 선수, 지도자 등이 모인 자리에서 은퇴를 선언한 김정아 선수에게 공로패를 수여한 것. 군이 배포한 보도자료 속 김정아 선수의 밝은 표정에 끌려, 장애인체육회 박종도 사무국장을 통해 자리를 마련했다.

홍성 갈산면 출신인 김정아 선수(50)는 ‘지천명(知天命)’이 됐지만, 은퇴가 이르다고 여겨질 정도로 동안이었다. 그는 연기자의 꿈을 키워가던 중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김 선수의 사연은 2022년 2월 KBS1TV ‘사랑의 가족’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김정아 선수는 “1997년의 일입니다. 서울에 살며 1년쯤 보조출연 정도의 활동을 했을 때죠.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어요”라며 “이혼 후 두 딸을 데리고 고향으로 왔어요. 2002년쯤 생활체육으로 운동을 시작했죠. 처음엔 탁구였고, 마라톤도 취미로 했어요”라고 회고했다. 취미로 선택한 마라톤은 휠체어펜싱 국가대표 김정아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06년 어느 마라톤 대회에 갔다 만난 대한장애인펜싱협회 사무국장의 제안을 받았죠. 저를 보며 ‘펜싱에 최적’이라고 설득해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검을 잡기로 결심은 했지만, 길은 잘 보이지 않았다. 김정아 선수는 “지금에 비하면 훨씬 체계적이지 못했던 시절이죠. 여기엔 지도자도 선수도 없었을 때”라며 “홍성군지체장애인협회 김호현 회장님이 운동을 봐주시고, 장비는 홍성군에서 후원해줬어요. 처음엔 눈동냥으로 배우며 기본만 반복했던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이어 “당진의 유희명 선수가 홍성까지 와서 가르쳐주고, 함께 훈련도 해줬어요. 그러다 첫해에 전국체전 시상대에 섰고, 조금씩 관심이 늘었죠. 그러면서 충남 휠체어펜싱이 알려지고 팀도 꾸려졌어요. 그게 2008년쯤의 일”이라고 더했다.

선수 생활 중 가장 빛나던 한 장면을 물었다. 잠시 고민에 빠졌던 김정아 선수는 ‘2009년 전국장애인체육대회’라고 답했다. 그는 “개인전과 단체전 2개씩, 대회 4관왕에 올랐죠”라며 “당시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죽기 살기로 운동할 때였어요. 체육관에 안 나가는 날에도 방안에 작은 타깃을 만들어 놓고 찌르는 연습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스포츠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깨닫고 더 열심히 하게 됐죠. 자신감도 커졌고요”라고 부연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한 답은 조금 더 빨리 나왔다. 그는 “운동으로 힘든 건 없었어요. 다만 다른 선수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하고, 운동을 그만두는 걸 볼 때가 안타까웠죠”라며 “운동으로 먹고 살길이 별로 없어요. 대표팀에 뽑혀 훈련수당을 받고 메달 포상금이나 우수선수 수당을 받으면 그나마 낫지만 그건 소수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홍성군 직장운동경기부가 생기고, 기업 연계도 하는 등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갈 길은 멀죠”라고 보탰다.

2010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당시 활약해 오던 B등급이 아닌 A등급 판정을 받으며 고전했다. 김정아 선수는 “장애인체육은 등급 간 차이가 엄청나요. 라이트급 권투 선수가 헤비급에 출전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패러게임 전 일반 대회에서 한국이 워낙 잘해 장애인게임이라도 막아보자는 의도”라고 확신했다. 이어 “그 이듬해에 스페인까지 가서 국제 등급을 B로 다시 받아왔다”고 부연했다.

그와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은퇴’로 이어졌다. 김정아 선수는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재작년쯤이었죠. 주위의 만류와 부탁으로 1년 더 뛴 것”이라며 “선수로서는 끝이지만, 충남장애인펜싱협회 사무국장의 책임이 남았죠. 처음 협회가 생길 때부터 맡아 온 자리인데 선수 생활을 병행하느라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 했어요. 이젠 내 운동한다는 변명도 안 통할 테니 제대로 해야죠”라고 다짐했다. 이어 “선수 발굴이나 세대교체 등 숙제가 산더미”라고 더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하자 “선수는 운동에만 집중하면 돼요.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김정아 선수와의 인터뷰는 지난해 연말 공로패 수상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선수 생활을 마치며 공로패를 드리고 싶은 사람’을 마지막 질문으로 건넸다. 생각에 잠겼던 김정아 선수는 “홍성군장애인종합복지관 김지환 관장님”이라며 “펜싱을 시작할 때 장비 지원도 받아주시고, 돈 걷어서 지도자도 데려오셨죠. 필요할 땐 직접 선수로 뛰기도 하셨어요. 참 감사한 분”이라고 전했다.

홍성군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지난 5일 만난 김정아 선수(앞줄 왼쪽 두 번째)가 박규화 감독(뒷줄), (앞줄 왼쪽부터) 유희명·김동훈·최두홍 선수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홍성군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지난 5일 만난 김정아 선수(앞줄 왼쪽 두 번째)가 박규화 감독(뒷줄), (앞줄 왼쪽부터) 유희명·김동훈·최두홍 선수와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노진호 기자
지난달 27일 홍성군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3 홍성군 장애체육인의 밤 행사 중 이용록 홍성군수가 김정아 선수(왼쪽)에게 공로패를 주고 있다. 홍성군 제공
지난달 27일 홍성군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3 홍성군 장애체육인의 밤 행사 중 이용록 홍성군수가 김정아 선수(왼쪽)에게 공로패를 주고 있다. 홍성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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