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 더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 더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4.01.15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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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이초현氏
2011년 12월 25일 탈북… “힘든 과정 거쳤지만, 이젠 내 집도”
가장 힘든 건 먹고 사는 일… “처음 쌀 사던 날 잊을 수 없어”
비영리단체 ‘제온’ 사무국장… “행복 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지난 9일 충남하나센터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 비영리단체 ‘제온’ 이초현 사무국장. 사진=노진호 기자
지난 9일 충남하나센터에서 만난 북한이탈주민 비영리단체 ‘제온’ 이초현 사무국장. 사진=노진호 기자

2011년 12월 25일, 2012년 2월 17일… 북한이탈주민 이초현(53) 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들이다.

지난 9일 천안에 있는 충남하나센터에서 만난 이초현 씨는 현재 북한이탈주민 비영리단체인 ‘제온’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제온’은 제주도부터 북한의 끝인 함경북도 온성까지 하나의 땅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초현 사무국장은 2011년 12월 25일 탈북해 다음 해 2월 17일 마침내 대한민국에 왔다. 그는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거쳤다. 하나원을 나오면서 살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전남 목포로 갔다”며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다. 수도권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남편 누나가 탈북해 중국에 살고 있었다. 어떻게 연락이 닿아 북한을 떠나기로 한 것”이라며 “탈북 결심 그 자체가 가장 힘들었다. 부모님이 다 거기 있고, 품어주지 못했지만 고향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먹고 살길이 열린다고 해서 남편과 둘이 압록강을 건넜다. 그리고 다음 해에 친정엄마를 모셔 왔다”고 회고했다.

이 사무국장의 고향은 함경남도 북청이다. 그는 “동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작은 어촌이라 고난의 행군 때도 버틸 만했다. 좋은 동네…”라고 떠올렸다.

더 잘살아보려고 온 대한민국이지만, 뭐든 쉬운 일은 없었다. 그는 목포에서 1년쯤 살다 너무 힘들어 서울로 향했고, 김포를 거쳐 4년쯤 전에 아산으로 왔다.

이 사무국장은 “북에선 한의사였다. 여기 와서 직업이 사라지니 우울하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그래도 김치공장, 건설 현장, 요양보호사 등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서 하루에 환자 20~30명 정도를 진료하면 2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 근데 대한민국은 일당이 6만원이나 됐다. 처음 일당을 받고 쌀 20㎏ 1포대를 사 집에 오던 날을 잊을 수 없다”며 “북한은 시장에서 하루 500원이나 1000원을 벌어 옥수수 한 홉 사서 죽 쒀 먹는 사람도 많다. 여기 일당은 신기할 정도였다”고 더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 나라에선 내가 하고 싶으면 공부도 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면 살 수 있다. 난 자격증 7개를 땄고, 대학도 졸업했다”며 “남편은 화물 사업을 한다. 지금은 형편이 많이 나아져 시골이긴 하지만 집도 샀다”고 자랑하며 미소 지었다.

이 사무국장은 아산 신창면에 산다. 아산행은 남편의 화물 사업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한민국의 중간쯤이라 일하기 더 좋다는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사무국장은 “수도권에 살 때 아이 키우기는 더 좋았다. 복지 혜택이나 육아 지원 등이 더 많았다. 김포에선 간호조무사로 일했는데 아산에 와선 육아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대한민국에 와서 딸을 출산했고, 어느새 열두 살이 됐다고 한다.

아쉬움은 있었어도 그는 아산을 참 좋아한다. 이 사무국장은 “정이 있다. 마을 어르신들도 참 잘해주신다. 뭔가 여유가 있는 지역이란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사무국장이 몸담은 ‘제온’은 북한이탈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가는 단체다. 그는 본인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리고 딸을 위해 바쁘게 살면서도 북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사무국장은 “북한이탈주민은 기반이 없어 힘들 수밖에 없다. 내가 올 땐 정착지원금이 600만원이었는데 탈북 브로커 비용이 800만원이나 됐다”며 “경제적으론 힘들지만, 여기 사람들과의 마찰이나 문화 적응에 대한 어려움은 많이 줄었다. 다 친구처럼 잘 지낸다”고 말했다.

‘제온’에 대한 이야기도 더 물었다. 그는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 15명이 활동 중이다. 제온은 ‘우리 먼저 행복하자’는 뜻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조금씩 퍼트리자고 다짐했다”며 “첫해 땅 500평을 임대해 감자와 고구마, 배추, 콩 등을 심었다. 우리도 나눠 먹고 복지시설 등에도 기부했다. 다들 스스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다음 해 1700평으로 늘렸다. 그렇게 수익을 모아 사무실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 무용과 중창을 하는 예술단도 있다. 지난해는 8차례 무대에 올랐다. 불러주시면 어디든 가고, 충남하나센터에서도 많이 도와준다”며 “적은 공연비지만 단체에도 적립하고 출연료도 주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 사무국장은 “제온의 꿈은 북한이탈주민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그 과정이다. 내 꿈은 그 재단 이사장이 되는 것”이라며 “북한이탈주민은 겉도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다 나와서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북한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다. 분명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끝으로 이초현 사무국장은 “사실 바쁘게 사느라 꽃구경도 제대로 못 가봤다. 앞으론 제온 회원들과 함께 좋은 곳에 더 많이 다니고 싶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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