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기 힘든 아이… “중·고교 시기 취약”
어울리기 힘든 아이… “중·고교 시기 취약”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3.11.27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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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풀 수 있는 숙제, 느린 학습자
② 커져만 가는 ‘어려움’
학령기 전보다 학교 다니면서 문제 커져
학교생활 어려움… ‘사회성 부족’ 68.4%
‘자립’ 걱정… 유정이 엄마 “미래 불투명”
지난 10월 14일 홍성가족어울림센터 나래홀에서 열린 홍성군의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 전문가 양성 과정’ 첫 교육. 홍성군 제공
지난 10월 14일 홍성가족어울림센터 나래홀에서 열린 홍성군의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 전문가 양성 과정’ 첫 교육. 홍성군 제공

국제질병분류체계 등은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를 ‘인지적 기능과 인식의 결함을 포함한 불특정한 증상과 징후’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특성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지발달과 이해 속도가 느리다. 학령기 전에는 언어발달 지체가 나타나며 ‘약간 늦은 발달’로 보일 수 있으나, 학교에 다니면서 문제가 나타난다. 전문가들도 “느린 학습자 청소년은 정신·신체·학습·대인관계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중·고교 시기에 상당히 취약하다”라고 지적한다.

예산꿈빛학교에 다니는 열일곱 살 유정이(가명)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까진 실수해도 커가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좋게 넘어간다”며 “신체적 변화가 오고 학업 부담이 커지면서 ‘차이’도 더 분명해진다. 왕따 같은 문제도 생기고, 이해받지 못하면서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나마 병원이나 치료실은 아이를 돕는 방법을 고민하지만, 학교나 교육청은 더 ‘행정적’이다. 학교 활동 수행이 어려우니 약을 더 먹으면 안 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특수학교도 교육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좋은 교육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더 나쁜 상황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고 더했다.

㈜모두다 느린 학습자 성장지원센터(대표이사 백진숙 홍성YMCA 이사장·이하 모두다 센터)가 지난 9~10월 홍성지역 열아홉 가지 사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부모로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31.6%가 ‘부모·가족이 모든 부담 감당’을, 21.1%가 ‘치료·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이들의 평균 돌봄 시간(평일 기준)은 5~7시간이 47.4%였으며, 9~12시간도 31.6%나 됐다. 또 자녀에게 지출되는 월 평균 비용은 70만~150만원 미만(52.7%)이 절반이 넘었고, 150만~200만원도 2명이나 있었다.

모두다 센터는 학교생활의 어려움도 물었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면서 겪는 어려움(복수 응답)은 ‘사회성 부족’이 68.4%로 가장 많았고, ‘학업 수행의 어려움’과 ‘또래 친구를 사귀기 어려움’도 57.9%씩 응답했다. ‘왕따 등 교내 낙인 효과’와 ‘교사의 편견·오해’도 각각 36.8%와 21.1%로 가족을 힘들게 했다. 조사 참여자 절반 이상(11명)은 자녀의 전학이나 중도 포기도 고민했다고 한다. 자녀 학교 선생님의 ‘느린 학습자’ 인지에 대해선 52.6%가 회의적이었으며, 63.1%는 학교 친구들은 잘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정한진 혜전대학교 언어치료과 교수는 본보 기고문을 통해 제도적인 지원책 미비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2016년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됐고 전국 12개 지자체에 관련 조례가 제정됐지만, 온전히 느린 학습자만을 위한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모두다 센터에 따르면 도내에는 충남도와 홍성군·당진시·천안시·서산시·보령시에 관련 조례가 있었다. 홍성군 조례 제1조는 ‘느린 학습자의 자립 및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유정이 엄마는 아이가 커가며 고민도 커지는 것 같았다. 그는 “얼마 전 한 간담회에 갔는데 남자 장애인(느린 학습자)은 큰 문제만 없이 취직만 하면 가정을 이루는데 여자는 임신·출산 등의 벽에 막혀 어려움이 더 크다고 입을 모았다”며 “유정이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잘 지낼만한 작은 공동체 마을을 찾아볼까도 싶다. 다 부모로서의 숙제”라고 씁쓸히 전했다.

모두다 센터 조사 대상자들은 자녀의 장래에 대해 가장 걱정되는 것(복수 응답)으로 ‘일상생활 자립’을 1순위(89.5%)로 꼽았으며, 사회 적응(47.4%)과 대인관계·취업(이상 36.8%), 성 문제(31.6%) 등이 뒤를 이었다.

그동안 느린 학습자에 대한 지원은 부족함이 많았지만, 지금도 늦진 않았다. 모두다 센터 조사 대상자들은 느린 학습자 조기 발굴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로 ‘미취학 시기 국가 종합심리검사(68.4%)’와 ‘종합지원센터 설립(63.2%)’ 등을 원했다. 또 가장 필요한 지원 서비스로는 ‘학교 내 지원(68.4%)’, ‘지역사회 복지서비스(57.9%)’, ‘바우처 지원(52.6%·이상 복수 응답)’ 등을 꼽았다.

느린 학습자에 대한 교육 지원(복수 응답)은 ‘성교육(68.4%)’, ‘또래 협력 프로젝트(57.9%)’ 등을 바랐으며, 가장 필요한 교육 제도는 ‘전문교사 양성’과 ‘맞춤형 교육매뉴얼 개발’이 78.9%씩으로 가장 많았다.

‘유치원 교사 A씨는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은 어린 시절 부모 이혼과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져 초등학교 때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했다. 그는 어눌한 말과 행동 탓에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 교사의 꿈을 이뤘다.’

모두다 센터에서 받은 자료에 담긴 한 느린 학습자의 사례다. A씨와 같은 개인의 노력에 사회적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희망은 더 커질 것이라 믿는다.

※㈜모두다 느린 학습자 성장지원센터의 조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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