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도 거의 다 갔다. 2023년을 마무리해야 할 계절, 홍성군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 제6기 입주예술가들도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이응노의 집은 이달 14일부터 오는 12월 10일까지 김영봉·김혜원·서해근·임동현·장은경 작가의 ‘결과보고전’을 연다. 이들은 올해 화이트데이(3월 14일)에 주민과의 만남 행사로 첫인사를 전했다. 당시 작가들은 ‘방치된 곳이나 버려진 곳의 쓸모를 다시 찾는 작업(김영봉)’,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기록(김혜원)’,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무기의 껍데기를 만드는 일(서해근)’, ‘사회적 관계를 주제로 한 예술배달부(임동현)’, ‘그 지역을 밝혔던 사람들과 그 역사에 관한 가상의 모뉴먼트(장은경)’ 등으로 자기를 소개했다.
내포뉴스는 지난 4월 컨테이너 스튜디오와 한옥 스튜디오로 나눠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이응노의 집 창작스튜디오 제6기 입주예술가들은 지난 6월 ‘완벽에 가까운 계획’이란 제목의 중간 보고 전시를 열었으며, 8월에는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과 레지던스 기획 교류전 ‘투엑스라지(XXL)’를 펼쳤다.
이응노의 집에 깃든 아티스트들을 다시 만난 건 전시 관련 영상 촬영이 진행된 지난 20일이었다. 이 자리에선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 △홍성, 이 시간의 의미 △앞으로의 계획 등 세 가지를 물었다.
김영봉 작가는 “서해안을 끼고 있는 홍성의 지리적 특성에 주목했다. 시간이 날 때면 해안가를 걸으며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 누군가 몰래 불태운 폐기물 등을 수집했다. 그런 걸 통해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자연 곳곳을 흠집 내는 우리를 보게 됐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환경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전하고 싶었다. 우린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봉 작가는 또 “여러 지역을 오가며 작업하는 내게 새로운 지역에 대한 발견과 경험은 큰 의미가 있다. 홍성의 자연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고, 씁쓸함도 있었다. 한 지역의 문제는 전 지구적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다양한 형태의 쓰레기들을 만나는 건 항상 설레고 새롭다. 이것들을 잘 가공하고 기록해 작업으로 풀어나가고 싶다”며 “다음 목적지는 미정이다. 여기서 경험한 자연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더 연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혜원 작가는 “홍성 원도심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 이야기를 책으로 냈고, 원도심 공동화 등 큰 틀은 편집해 전시장에서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지금까지 내 작업은 어떤 형태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이번엔 그냥 이야기로써 존재하게 내버려 뒀다. 일종의 실험”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문’도 이번 실험 중 하나다. 인터뷰 팩트에 기반해 제삼자에게 사실과 허구를 섞은 이야기를 의뢰했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성립되는 게 소문이기에 그 집단의 색이 나오리라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김혜원 작가는 “홍성은 처음이었다. 여기서 좋은 공부를 했다”며 “홍고통이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야생동물이 택배를 물어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선 서울에 머물 곳을 찾아볼 생각이다. 석사 논문도 써야 해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서해근 작가는 “재활용한 스마트폰과 모니터, 실, 전선 등으로 지금의 세계와 전쟁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스라엘 가자 지구와 뉴욕 맨하탄, 서울, 아프리카 나미비아와 케냐의 동물, 우주정거장 캠 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가 그 속에 같이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빈부와 외모, 지역·환경 등과 상관없이 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라며 “작품과 연결된 색색의 실은 ‘인연’을 의미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다 연결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광천 원촌마을 아이들 8명과의 ‘꿈을 실은 돛배’, 홍동초 6학년 28명과의 ‘날아라 오리’, 홍고통 다섯 가족과 함께한 ‘지구를 여행하는 혹등고래’ 등의 작업을 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만족스럽다”며 “홍성은 새로운 시도의 기회였다. 그건 완벽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것이다. 컨테이너 스튜디오와 함께 머문 작가들, 배드민턴 한울클럽 등이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다.
서해근 작가는 “작품 제목에 에피소드1이라고 붙였다. 네트워크가 첨가된 연작을 해볼 생각”이라며 “우선 서울로 간다.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을 계획 중”이라고 더했다.
임동현 작가는 “내 주제는 ‘자연’이었다. 올해 작업의 공통점은 우연과 집적이다. 목적지를 안 정하고 걷다 보면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된다. 정처 없던 발걸음을 기록한 스마트워치의 선을 집적해 작품으로 만들었다. 생각이나 감정에 따라 긋는 게 아니라 ‘우연·흔적·집적’의 결과”라며 “나무껍질도 작품이 됐다. 중심부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지만 내부를 보호하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찬밥 취급한 대상들에 대해 존중의 밥상을 차려 봤다”고 답했다.
임동현 작가는 또 “여기선 몸으로 움직이며 자연과 교감했다. 발견의 과정에 있는 이곳의 산들이 기억날 것 같다”며 “지난 9월 시화담요 사랑방에서 ‘나의 목소리를 찾아’란 프로젝트도 했다. 여러 관계 속에서 잊힌 자신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다양한 미술 기법으로 표현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의 지역활동 프로젝트는 쉽지만은 않았다. 오롯이 지역민의 작품으로 돌아가고 그들이 주인공이 돼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더했다.
끝으로 임동현 작가는 “사회에서 주목하지 않는 대상과 사람에 대한 작품을 발전시켜갈 것이다. 인천에서 하는 생활미술동아리 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장은경 작가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실증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다. 이미지로써 너무 쉽게 보여지는 게 아닌 그 뒤를 보고자 했다. 그래서 관람객이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는 수고로움을 전시에 더했다”며 “3~10월 매거진을 발행했다. 그중 9개의 이야기를 뽑았고, 짝을 이루는 9개의 오브제를 선보이고 있다. 내가 전하는 다양한 이야기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보다는 ‘이 시대의 사실’인지가 중요하다. 홍성의 역사적 소재도 가져왔으니 재밌게 접근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시경 카메라로 볼 수 있는 상자 속 적산가옥 디오라마와 천주교 성지와 관련된 고함을 지르는 향기 모뉴먼트 등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장은경 작가는 “홍성은 정말 좋았다. 이 지역과 레지던스를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며 “초반에 갔던 백월산이 특히 좋았다. 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점도 합격”이라고 답했다. 이어 “올해는 이래저래 바빴다. 그러면서 놓친 것도 많다. 다시 좀 챙겨볼 생각”이라며 “우선 경기도 광명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더했다.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12월 10일까지다. 이응노의 집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은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