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정의·현황 그리고 이야기
IQ 71~84 정도… 지원·보호가 필요한 사람들
전체 인구 13.59%… 초등학교 한 반에 2~3명
열일곱 유정이 엄마 “그저 모두 부모의 숙제”
열일곱 살 유정(가명)이는 집에 오면 혼자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휴대전화로 유튜브를 본다. 또 혼자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꺼내 먹고, 숙제도 한다. 집안에서 유정이는 평범한 요즘 아이다. 하지만 유정이는 불안이 심해 그네와 미끄럼틀을 탄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도 자전거는 못 탄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나이지만, 중3 과정을 배우고 있다. 언어 이해와 전달에 능숙하지 못해 치료 수업도 다닌다. 사실 유정이는 ‘느린 학습자’다.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인)’는 IQ 71~84 정도로 지적장애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으로 인해 소속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원과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말한다. ‘느린 학습자’란 말에는 ‘느리지만, 천천히 배워간다’는 의미가 담겼다.
느린 학습자의 완전한 사회통합을 꿈꾸는 사회적기업인 ‘㈜모두다 느린 학습자 성장지원센터(대표이사 백진숙 홍성YMCA 이사장·이하 모두다 센터)’는 지난 9~10월 홍성지역 열아홉 가지 사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내포뉴스는 센터의 조사 결과와 관련 자료, 지역 학부모 인터뷰 등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느린 학습자’가 처한 현실과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를 알아보기로 했다.
경계선 지능과 느린 학습자는 엄밀히 따지면 경계선 지능이 느린 학습자란 큰 개념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적 개념도 불명확한 실정이다. 이를 표현하는 용어도 ‘저성취 아동’, ‘유령 아동’, ‘학습장애’ 등 다양하다. 모두다 센터의 설문조사 참여자 중 절반 이상(12명·63.1%)도 느린 학습자의 현 법률용어인 ‘경계선 지능인’의 적절성에 부정적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경계선 지능인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은 IQ 정규분포도에 따라 전체 인구의 약 13.59%를 차지한다. 대한민국 총인구를 고려하면 약 699만명으로 추정되며, 초등학교의 경우 한 반에 2~3명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9월 기준 충남의 학령인구는 25만 4957명으로, 지능 정규분포곡선에 따른 전체 인구의 13.59% 추정을 기반으로 하면 도내 느린 학습자는 3만 4640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농·어촌, 저소득, 조손, 다문화 등 취약계층에서 느린 학습자 수치가 높아진다는 학계 보고를 감안하면 충남 중남부 지역에 더 많은 느린 학습자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홍성의 경우 등록 아동·청소년 인구 1만 5893명(2022년 12월 기준)을 지능 정규분포곡선에 따른 전체 인구의 13.59%로 추정하면 2160명 정도의 느린 학습자가 있다. 국가 차원의 통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모두 추정치임은 아쉬운 부분이다.
모두다 센터 조사 대상자의 자녀는 10~14세(9명)으로 가장 많았고, 15~19세와 20~24세가 4명씩이었으며, 5~9세도 2명 있었다. 이들 자녀의 느린 학습자 판정 연령은 5~9세가 11명으로 절반이 넘었으며, 0~4세와 10~14세가 2명씩이었다(무응답 4명).
앞서 이야기한 ‘조금 느릴 뿐인 요즘 아이’ 유정이의 어머니(51)를 만난 건 지난 13일 홍성의 한 카페였다. 유정이는 사정상 함께하지 못했다.
유정이가 ‘조금 다르다’라는 것을 인지한 건 다섯 살쯤이라고 한다. 유정이 엄마는 “네 살까진 가정식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때도 영유아 검사는 하지만 평소 한 번도 시켜보지 않은 무수한 항목을 부모가 직접 점검해야 하는 등 비전문적”이라며 “다섯 살이 돼 규정에 따라 더 큰 규모의 관립 어린이집으로 옮겼고, 그해 연말 유정이 담임 선생님이 ‘재등록이 어려울 것 같다. 특수 쪽을 알아보라’고 알려왔다. 어린이집 자리가 한창 부족했던 시기라 너무 난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검사기관에 갔는데 신체장애는 없었고 자폐나 분리불안을 의심했다. 이후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를 찾았다. 지적장애를 진단받았지만, 등급은 낮았다. 성장하며 좋아질 수 있다는 이유로 보수적·안정적으로 진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유정이의 IQ는 60대 초반이다. 하지만 수행 기준에 따라 20~30 정도가 나올 때도 있다. 유정이는 일반 학교 ‘도움반’을 거쳐 지금은 예산꿈빛학교에 다닌다.
유정이 엄마는 “어린이집은 1년까지 유예할 수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증빙이 필요한 데 우선 비용 부담부터 크다. 유정이도 처음 일반 검사기관에 갔을 때 40만원 정도가 나왔고, 대학병원에 갔을 때 130만~140만원이 들었다”며 “또 장애와 경계성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다. 그저 모두 학부모의 숙제”라고 말했다.
유정이는 열두 살(초등학교 5학년) 여동생이 있다. 아직 어린 동생이지만, 이 사회보다 그리고 어른들보다 언니의 다름을 잘 이해하고 있다. 유정이 엄마는 “언니와 사이가 참 좋다. 언니의 상황에 대해 많이 소통해 조금 느리게 가고 있단 걸 아는 것 같다”며 “막내는 언니가 서투른 게 있으면 도와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언니는 존댓말을 참 잘 써’라고 칭찬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유정이 같은 아이가 덜 낯설어지길, 더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모두다 느린 학습자 성장지원센터의 조사 결과